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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김진아 작가/20200212

by 주영씨 2020. 2. 15.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여성으로 겪어왔던 많은 일들이 새삼 낯설기도 하면서, 나와 하나 둘의 공통점으로 엮이는 것 같았다. 저자는 대구에서 상경해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취직해 경력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과거에 광고계 유명인사였다. 지금은 광고 일을 그만두고 여성들을 위한 카페 ‘울프소셜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나는 김진아씨를 유튜버 ‘하말넘많’의 채널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유명한 페미니즘 도서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의 저자인 것을 알고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중후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독서모임도 가지고 공부도 해 오는 마당에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알기만 했을 뿐 읽어보지는 않다가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여성들이 느끼는 공통점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별거 없는 사람이구나,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잘 꾸미고 멋진 여성을 향한 부러움, 동경과 함께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1년 내내 힘들었고 아직도 여전히 주눅들어 있을 때가 많은 내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여러 교훈을 주었다.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을 나를 중심으로 두고 편의로 행동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던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성조차도 조직 내 끌어주는 인맥 없이는 장기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 역시 당시엔 알지 못했다.”, “내 편이 없는 상태, 무리에서 떨어진 사자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취향,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잘라내면 결국 아무도 주위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도 명심하자. 비위가 약한 여자들은 알아서 고립돼주고 그거야말로 조직이 바라는 바다.” “남자 입사 동기들은 이제 간부가 되고, 교수로 초빙되는데 나더러 마흔 넘자마자 반투명 인간이 되라고? 너무 불공평하잖아? 구조가 등 떠미는 대로 순순히 그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관계에 있어서 약했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무리 혼자서 잘해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김진아씨가 직장에서 직접 경험해 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었다. 나또한 자존심이 상해서, 나의 존엄을 위해서라고 믿으며 조직에서 스스로 소외시킨 적이 한 두번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감이 됐다. 물론 나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나는 아직 어리고 사회생활 경험도 부족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남성 카르텔, 여성을 배제하고 형님, 형님 부르며 라인따라 꿀 빠는 ‘보이즈클럽’의 존재들을 알게 되었다. 4~5년 후면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차별의 현장이다. 사회가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변화는 계속해서 필요하다. 더 여성이 발언권을 가지고 당당히 주장하고 마땅히 경청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

 


 

 

페미니스트로서 느낄 내적 갈등들. 김진아씨는 페미니즘을 접하고도 더 쿨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다이어트, 피부관리 등에 돈도 많이 썼다. 나도 페미니즘을 접하고 신체의 기능보다는 외관에 여전히 집착하는 모습이 많았기에 이해가 됐다. 여성이라면 나이,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만한 문제다. 여전히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고 남자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시대를 사는 나는 여성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남자에게 욕망당해야 여자로서 존재 가치가 높아진다는 건 거대한 사기다. 예쁘다고 월급을 더 받나? 세게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리우드 여자배우들조차 남자 배우들에게 훨씬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는다. 우리는 초이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해방되는 순간 진짜 힘이 생긴다. 타인이 아닌 나에게 힘을 돌려주자.”

 

 

 

 

출처 : 네이버 '꾸밈노동' 이미지

 

아직까지 사회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도화살 메이크업, 복숭아 메이크업이라는 이름으로 답답한 색조 화장에, 꽉 끼는 옷에 몸을 쑤셔놓고 스스로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티비를 보든 영화를 보든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우리는 여성혐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 ‘프로 불편러’가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이상한 건가 생각하다가도,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까봐 두렵기도 하다. 자꾸만 흔들리게 된다.

“더 멋진 나로 꾸미려고 페미니즘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자기계발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라는 사실. 페미니즘이 남성 중심 사회와 가부장제를 향한 생존투쟁이자 해방운동이라는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여자들은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페미니즘 도서들을 접할 때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미를 사랑하고 미를 추구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미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치,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는 믿음으로 출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고통, 묵인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어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고, 혐오를 바탕으로 둔 다른 성소수자 차별, 배척 등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들이 옳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정의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 코스프레에 심취해 있는 지 모르겠지만 혐오없는 페미니즘이었으면 좋겠다.

김진아씨는 말한다. “누가 더 도덕적인지가 아니라 이것이 여성의 파이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생각할 것을. 여성들은 어릴 적부터 주입된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 여러 경우들을 제외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많은 책임감, 도덕을 강요받지만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칭찬을 받아도 사회가 규정한 착한 여성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질책을 받기 일쑤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자신을 위한 언어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 전에 다른 이들에게 양보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남성 중심 사회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이 비밀을 알아채버린 여자, 그리하여 쉽게 통제 가능한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여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뷰티 산업 강국 한국에서 지금 ‘탈코르셋’이 운동이자 저항인 이유다.”

 

 

 

 

출처 : 네이버 '남녀 고용차별' 이미지

 

마지막으로 저자는 여성들이 문과보다 이과를, 공대나 IT계열에 진학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공대에서 도망쳐 온 사람으로서 조금 후회나 반성이 되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아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삶’ 속 내가 공대를 전공했을 때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공고한 남성 카르텔을 깨부수기 위한 발판으로 여성들이 그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도 공감하는 얘기다. 글 쓰는 것은 취미 정도로 하고 그 대단한 ‘정의감’을 핑계로 법대로 전과한 것이 좀 걸리긴 했다. 누구나 글 쓰고 문학 공부하는 취미쯤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공대 공부가 싫었을까. 근데 다시 봐도 진짜 싫다.

“이미 고용차별, 임금차별을 겪고 있는 여성에겐 그렇기에 전문성이 더욱 절실하다. 단순 노동과 구분되는 전문성을 가져야 여성은 경력단절, 나이차별로 인한 저임금의 늪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전문분야 외 영어를 훈련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국내 수요가 부족할 때, 기술 발전으로 갈수록 업무 장벽이 낮아지는 세계시장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나는 내 분야의 전문성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노력으로 채워지지 않는 텅 빈 야망은 오히려 독이라고 했다. 하나라도 온전히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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